독일령 사모아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독일령 사모아 Deutsch-Samoa | |
독일 제국의 식민지 | |
국기 | 휘장 |
독일령 사모아의 지도 (붉은색) | |
1899 ~ 1919 | |
위치 | 사모아 |
수도 | |
정치체제 | |
지도자 | 독일 황제 |
언어 | |
성립 이전 | 사모아의 선사시대 |
멸망 이후 | |
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사모아는 18세기 후반부터 서양 열강들의 왕래가 잦은 지역 중 하나였다. 때문에 서양인들과 접촉이 잦았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사모아에도 서양인들의 기독교 포교가 이루어져 당시 많은 사모아인들이 사모아 토착 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19세기 후반부터 당대의 강대국이었던 미국, 대영제국, 독일 제국이 사모아의 이권을 획득하기 위해 충돌하였다. 이는 사모아의 내전으로까지 발전하여 1886년부터 1894년까지 사모아는 열강의 전장이 되었다. 다만 내전은 당대 강대국들이 개입한 것 치고는 조용하게 진행되었는데, 아피아(Apia) 항구에 수 많은 함대를 집결시켜놓은 세 나라가 서로 눈치를 보며 대치하던 와중 거대한 사이클론이 항구를 덮쳐 거의 모든 함대들이 쏠려나가 버리고 말았다. 사이클론은 1889년 3월 15일 부터 3월 16일까지 만 하루동안 진행되었다.
이런 예상못한 사태로 위기감을 느낀 세 나라는 결국 협상을 통해 사모아를 분할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국은 사모아 동쪽(미국령 사모아)을, 독일 제국은 사모아 서쪽(독일령 사모아)을 차지하게 되었다. 영국은 영토를 분할받지는 못했다.영국 : 괜찮아. 여기 아니라도 우리 식민지 많은데 뭘.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 1914년 뉴질랜드가 이곳을 점령하였고 독일 제국이 패전하고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진 뒤에는 뉴질랜드의 위임통치령(서사모아)이 되어 사라졌다.
19세기 후반부터 당대의 강대국이었던 미국, 대영제국, 독일 제국이 사모아의 이권을 획득하기 위해 충돌하였다. 이는 사모아의 내전으로까지 발전하여 1886년부터 1894년까지 사모아는 열강의 전장이 되었다. 다만 내전은 당대 강대국들이 개입한 것 치고는 조용하게 진행되었는데, 아피아(Apia) 항구에 수 많은 함대를 집결시켜놓은 세 나라가 서로 눈치를 보며 대치하던 와중 거대한 사이클론이 항구를 덮쳐 거의 모든 함대들이 쏠려나가 버리고 말았다. 사이클론은 1889년 3월 15일 부터 3월 16일까지 만 하루동안 진행되었다.
이런 예상못한 사태로 위기감을 느낀 세 나라는 결국 협상을 통해 사모아를 분할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국은 사모아 동쪽(미국령 사모아)을, 독일 제국은 사모아 서쪽(독일령 사모아)을 차지하게 되었다. 영국은 영토를 분할받지는 못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 1914년 뉴질랜드가 이곳을 점령하였고 독일 제국이 패전하고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진 뒤에는 뉴질랜드의 위임통치령(서사모아)이 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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